과거 집을 선택하는 주요 기준은 직장과의 거리, 학군, 교통망 등이었지만, 최근 3040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는 전혀 새로운 조건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바로 아이들이 아플 때 신속하게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 즉 ‘병세권’입니다. 단순히 병원이 가깝다는 의미를 넘어, 응급 상황 발생 시 아이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절실함이 이들의 주거지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세계일보의 ‘육아동네 리포트’는 이러한 3040 부모들의 고민과 선택을 심층적으로 조명하며, ‘병세권’이 새로운 주거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현상을 생생하게 전달했습니다.
특히 이른둥이 자녀를 둔 김수진 씨의 경험은 ‘병세권’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한 달에 한 번 병원 방문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병원 근처의 편리한 환경을 부러워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젊은 부모들의 공감을 자아냅니다.
이대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심소연 교수는 영유아의 경우 병의 진행 속도가 빨라 소아 전문 진료를 가까운 곳에서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며, 특히 이른둥이나 기저질환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병세권’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 역시 이를 뒷받침합니다. 영유아 부모의 60% 이상이 주거지 선택 시 소아 의료 인프라를 중요한 요인으로 고려하며, 의료 접근성이 좋은 지역일수록 추가 출산 의향 또한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는 불안과 불편함으로 인해 이사를 고려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경기도 광주에 거주하는 박지은 씨의 경험은 ‘병세권’의 절실함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갑작스러운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데리고 밤늦게 24시간 응급실을 찾아 분당까지 이동해야 했던 그의 불안감은, 응급 상황 발생 시 가까운 곳에 제대로 된 의료 시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서울 은평구에서 강서구로 이사한 최윤정 씨의 사례는 ‘병세권’이 단순히 개인의 선호도를 넘어 가족 간의 중요한 의사 결정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남편의 직장 접근성이라는 기존의 주거 조건보다, 첫째 아이의 폐렴 입원 경험을 통해 소아과가 많은 지역을 우선순위에 두게 된 최 씨의 결정은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출근 10분’보다 ‘병원 10분’을 선택한 그의 결정은, 아이의 갑작스러운 발열 상황에서 빛을 발하며 남편의 공감까지 얻어냈습니다.
실제로 소아과 병원 수는 ‘아이 키우기 좋은 동네’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 내 소아청소년과 병원은 송파구, 강남구, 강서구, 노원구 순으로 많았습니다. 특히 노원구와 강서구는 소아청소년과 밀집도가 높으면서도 강남권에 비해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여, 3040세대 부모들의 신혼집이나 첫 내 집 마련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KB부동산 통계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강남과 송파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3000만 원에 육박하는 반면, 노원구와 강서구는 1000만 원 내외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어, 경제적인 부담을 덜면서도 의료 접근성이 좋은 지역을 선호하는 젊은 부모들의 수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메디특구로 지정된 강서구는 마곡지구를 중심으로 젊은 인구 유입이 활발하며, 이에 따라 소아과 수요와 공급이 함께 증가하는 추세를 보입니다. 또한, 서울 동북권의 대표적인 주거 지역인 노원구는 우수한 학원가와 대단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젊은 가족층이 밀집되어 있어, 꾸준한 소아 의료 수요를 바탕으로 지역 내 병원 네트워크가 잘 구축되어 있습니다.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예전에는 학군이 주요 문의 사항이었지만, 요즘은 ‘아이 아플 때 바로 갈 병원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물어보는 분위기”라고 전하며, 소아과나 어린이병원이 많은 지역의 부동산 매물 문의가 꾸준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리은행 부동산 리서치랩 함영진 팀장은 주택 시장에서도 ‘초품아’, ‘역세권’, ‘학세권’과 마찬가지로 ‘병세권’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고려 사항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저출생 시대에 소아과 폐업이 늘면서 진료 예약이나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이로 인해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는 아이와 보호자의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을 지적하며, 이러한 이유로 3040 부모들이 의료기관 접근성이 좋은 주거지를 선호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병세권’ 지역은 임대차 및 매매 시장에서도 안정적인 수요를 유지하여 주택 가격의 급등락이 적은 경향을 보이며, 저학년 학부모뿐만 아니라 고령화 사회를 맞아 노인 인구 역시 의료 접근성이 좋은 주거지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병세권’은 더 이상 단순한 주거 편의 시설이 아닌,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응급 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처가 가능한 의료 인프라의 존재는 부모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며, 이는 곧 주거지 선택의 핵심적인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저출생 시대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병세권’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으로 부동산 시장에서는 ‘병세권’이 새로운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며, 주거 트렌드를 이끌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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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 부모들의 새로운 주거 조건, '병세권'이 뜨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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