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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으로 무고한 도민 희생 1945년 우리나라는 드디어 해방을 맞이한다. 하지만 나라는 좌익, 우익으로 혼란스럽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이념 대립으로 서로 싸운다. 백성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 당장 끼니도 잇기 어려운 시기에 공산주의는 지주들의 땅을 공짜로 나눠준다고 꼬드긴다. 자기 땅을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소작농들은 땅을 공평하게 나눠준다고 하니 공산당에 가입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제주도에서도 공산주의자가 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선량한 국민들이었다. 그런데 남한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공산당이 설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제주도는 공산당 세력은 크게 타격을 받지 않는다. 섬이라는 특수성이 작용된 듯 하다. 미군이 들어온 후 일단 내륙의 상황을 정리하는데 바빴으므로 제주도에는 늦게 들어가게 된다. 194.. 2021. 4. 3.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알려지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알려지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처음으로 알린 사람은 중앙일보의 신성호 기자였다.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1명이 쇼크사했다는 사회면의 짧은 기사를 썼다. 검찰은 박군이 수사기관의 가혹 행위로 인해 숨졌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중이라고 적었다.그러니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구타나 고문 등을 연상될 수 있는 기사였다. 박군은 서울대 운동권 학생이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이라고도 적었다. 이러니 시국사범임을 생각할 수 있는 기사였다. 이 짧은 기사가 나가자 기자들과 사람들은 경찰들의 해명을 요구하였다. 이에 경찰은 치니 하고 죽었다고 발표를 했다. 윤상삼 기자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처음 확인했던 의사의 목격담을 기사를 보도했다. 경찰들은 고문으로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믿었는데 박종철 군.. 2021. 3. 29.
시라소니 이성순의 삶 시라소니 이성순의 삶 ​ 시라소니 이성순은 1916년 2월 29일에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67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아버지가 목사인 이기정과 셋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시라소니 이성순은 어릴 때부터 골목대장이었다고 한다. 운동을 단 하루도 거르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였다. 보증 문제로 집안 사정이 좋지 않게 되어 16살에는 달리는 열차에 오르내리며 밀무역을 시작하였다. 이런 밀무역을 도비노리라고 한다. 열차에 잘못 올라타다가는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다. 민첩한 시라소니는 이 일을 하면서 몸을 단련하였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싸움도 잘할 수 밖에 없었다. 신의주와 인근 지역에서 싸움을 하다가 이북 제일의 싸움꾼이라고 소문난 박두성에게 싸움을 신청했다. 이북 최고의 주먹이자 박치기 왕으로 소문난.. 2021. 3. 25.
조광조의 개혁 도학정치 조광조의 개혁 도학정치 1506년 박원종, 성희안 등은 12년간 폭압적인 정치로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든 연산군을 쫓아낸다.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많은 선비들을 죽게 만들었고, 백성들의 삶은 돌보지 않고 자신의 사치와 방탕을 일삼았다. 박원종, 성희안은 유순정, 신윤무 등과 더불어 거사를 성공하여 진성대군을 옹립하니 이것이 중종반정이다. 중종은 연산군의 이복동생이다. 연산군의 폭정에 들고 일어난 반정으로 갑자기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중종은 즉위 초 반정 공신들에 의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으나, 연산군 시대의 잘못된 점을 고쳐 나갔다. 사화로 억울하게 죽은 선비들의 한을 풀어주고 성균관을 학문을 공부하는 곳으로 다시 만들었다. 반정 핵심인물인 박원종과 성희안이 차례로 죽자 서서히 왕권을 안정시켜.. 2021.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