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347 황윤길과 김성일, 서로 다른 주장 황윤길과 김성일, 서로 다른 주장 1590년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이 사절단으로 일본의 정세를 알아보려 파견되었다.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범할 것이라는 소문에서 일본 정세를 파악하러 간 것이다. 두 사람은 일본을 갔다 와서 서로 상반된 주장을 내세운다. 선조는 일본이 정말 우리나라를 침입해 올 것 같냐고 물어 봤다. 황윤길은 토요토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으니 반드시 조선을 침입해 올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김성일은 토요토미는 별로 위협적인 인물이 아니니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조선은 두 사람의 의견에 조선 조정도 두 편으로 나뉘어 언쟁을 벌인다. 결국 토요토미가 조선을 침입해 오지 않는다는 김성일의 의견을 수용한다. 조선 조정은 앞으로 다가올 임진왜란에 .. 2021. 3. 15. 우장춘 박사 그리고 씨없는 수박 우장춘 박사 그리고 씨없는 수박 러시아의 힘을 빌어 일본을 견제하려고 친러 정책을 폈던 명성황후가 1895년 을미사변으로 시해된다. 일본은 여우사냥으로 명명된 조선 왕비 시해 작전을 위해 음모를 꾸민다. 시해는 일본 낭인들이 맡고, 외관 상 조선인 훈련대의 반란으로 꾸민다는 것이다. 을미사변과 우범선 조선 왕비 시해를 주도했던 일본인은 주한일본공사 미우라였다. 일부 친일 조선 사람들을 끌여 들여서 조선인 훈련대 반란으로 꾸미려고 했다. 대표적 인물이 훈련대 제2대대장 우범선이었다. 우범선은 조선에 불만을 품고 친일파로 변절하였다. 그는 항상 조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조선왕비 시해 작전을 하기 전 우범선은 여러가지 결정적인 정보를 일본인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시해 당일 .. 2021. 3. 1. 봉림대군 효종의 북벌론 그리고 갑작스런 죽음 봉림대군 효종의 북벌론 그리고 갑작스런 죽음 1649년 인조가 죽자 봉림대군은 왕위에 올라 17대 왕 효종이 된다. 아버지 인조 때 청나라의 침입으로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난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전하였으나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하고 만다. 머리를 청나라 황제에게 조아리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봉림대군은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많은 고생을 한다.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는 청나라에 끌려온 뒤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청나라에 끌려온 많은 조선인 포로들을 구출하려고 노력했다. 또 청나라에 있으면서 서양의 훌륭한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조선을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다짐을 했다.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 청나라에서 오랜 볼모생활을 마치고 .. 2021. 3. 1. 사도세자의 무덤 융릉 사도세자의 무덤 융릉 조선시대의 무덤은 신분에 따라 이름을 다르게 붙였다. 왕, 왕비,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왕의 무덤은 능이라고 불렀다. 후궁의 무덤으로 왕세자의 친모의 무덤, 보위에 오르지 못한 왕세자의 세자빈의 무덤 등은 원이라고 불렀다. 그외 일반 사대부들의 무덤은 죽은 사람의 이름 뒤에 묘라고 불렀다. 그런데 능, 원, 묘의 세 가지 이름을 모두 가진 무덤이 있었다. 바로 융릉이다. 임오화변 발생 영조는 조선 21대 왕이다. 영조 재위 38년 신하들의 당파 싸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때 아들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갖혀 죽는 임오화변(1762년)이 일어난다.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된 정조 영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은 수은묘라고 부르고 장례를 신속하게 마쳤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목격한 정조는 .. 2021. 2. 28. 이전 1 ··· 79 80 81 82 83 84 85 ··· 8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