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의식주 및 유적지
- 역사공부
- 2021. 2. 4. 18:04
선사시대 의식주 및 유적지
구석기시대 의식주와 유적지
구석기 시대는 지금부터 약 70만년전에 전개되었다. 도구는 주로 있는 그대의 돌이나 뗀석기를 사용하였다. 옷은 동물의 가죽을 입었고, 식생활은 사냥이나 채집, 어로를 통해 해결하였다. 집은 자연 동굴에서 생활하거나 이동생활을 하므로 아무렇게나 지은 막집에서 생활했다.
구석기 시대에는 모두 평등한 사회이며 무리를 지어 이동 생활을 하였다.
대표적 구석기 유적지는 연천 전곡리, 공주 석장리, 청원 두루봉 동굴, 평안남도 상원 검은모루 동굴, 함경북도 웅기 굴포리 유적, 단양 수양개 유적 등이 있다.
구석기 시대에는 도구을 사용한 것이 뗀석기라고 했다. 이중 주먹도끼는 짐승을 사냥해서 가죽을 벗기고, 땅을 파서 먹을 것을 찾는 이 당시의 맥가이버 칼이라고 할 수 있다. 슴베찌르개는 구석기시대 후기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창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불을 사용하였으며 조리 도구로는 밀개와 긁개가 있다.
신석기 시대 의식주와 유적지
신석기시대는 BC 8000년 경으로 이때부터 중요한 것이 농사와 가축을 길렀다는 점이다. 농사를 지었으니 해안이나 강가에서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씨족을 중심으로 부족사회가 형성되었다.
옷은 가락바퀴와 뼈바늘을 이용하여 옷을 입었고, 조 피 수수 등 농경생활과 목축으로 식생활을 해결하였다. 물론 구석기시대처럼 사냥, 채집, 어로 생활도 하였다. 주생활은 정착을 하게 되니 집을 좀더 튼튼하게 지어야 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가운데가 움푹 파인 원형 모양의 움집이다.
신석기 사회는 부족을 중심으로 평등한 사회였다. 결혼은 다른 부족과 족외혼을 하였으며 샤머니즘, 토테미즘, 애니미즘 등의 신앙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도구로는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 돌괭이, 돌낫, 돌도끼, 돌화살촉 등이 있었다. 토기도 사용하였는데 음식물을 조리하거나 저장하는데 이용하였다. 대표적인 토기는 이른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빗살무늬 토기 등이 있다.
유적지로는 부산 동삼동, 서울 암사동, 양양 오산리 등이 있다.
청동기 시대의 모습
청동기 시대는 BC2000년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벼농사가 시작된 것이 특징이다. 벼농사를 시작했으니 농사가 잘 되는 곳과 안되는 곳의 차이가 생겨나게 된다. 잉여농산물이 생겨나니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겼으며 다른 지역을 쳐들어가서 빼앗기도 했다. 재물도 빼앗고 사람도 잡아와서 노비로 부리는 등 계급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우리 부족은 하늘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선민사상이 있었고, 무덤으로는 고인돌이 있었다.
집은 장방형의 움집, 다양한 형태의 집을 만들어 살았다. 적이 쳐들어오나 안오나 잘 살필 수 있는 곳이 배산임수 지역인데 그곳에 주로 집을 지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농기구는 반달돌칼이다.
토기는 민무늬토기, 미송리식토기(손잡이 있음)가 대표적이다. 거친무늬 거울과 비파형 동검도 청동기 시대에 사용했던 물건이다.
우리나라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한 군장국가였다.
철기 시대의 모습
철기시대는 BC 5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업 생산성은 늘어나고 철제 무기를 바탕으로 정복 전쟁을 하기도 하였다.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하여 명도전, 반량전, 오수전, 한자를 사용했다. 특히 한반도의 독자적 청동기를 발전시켜 세형동검을 만들었다. 잔무늬 거울과 거푸집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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