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왕 강화도령 철종 이원범

  중학교 때 조선 역사을 배우면서 농사꾼을 하며 살아가다가 왕이 된 인물도 있었다는 것을 알고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역사 선생님께서 그때에는 재능있는 왕족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고 하던 것이 기억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탄생된 왕이 철종 임금이다.

정조가 돌아가신 후 어린 임금 순조가 왕위에 오른다. 정조는 자기가 죽은 후에 자신의 개혁정치와 어린 세자를 잘 이끌 인물로 김조순을 선택한다. 유능한 관료였던 김조순을 순조의 후견인으로 내세운 것이다. 김조순은 정조의 신임이 뛰어났고, 순조의 장인이 된다.

 

그런데 갑자기 정조가 죽게 되자 김조순은 정조의 뜻과는 반대로 안동김씨들을 대거 등용하면서 순조를 뒤흔든다. 순조는 김조순의 세도정치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뜻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탄탄한 안동김씨들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순조에게는 영특한 효명세자가 있었다. 효명세자에게 큰 기대를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효명세자도 21살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난다.

효명세자에게는 외아들 헌종이 있었다. 8살에 왕이 되었으나 헌종도 23살의 나이로 후사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난다. 왕족은 세도정치의 회오리 속에 뛰어난 왕자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적통 왕자들은 한 명도 없으니 사도세자의 서자 계통에서 왕족을 찾게 된다.

그런데 사도세자 자손들 또한 대부분 반역에 연루되어 남아 있는 왕족이 거의 없었다. 남아 있던 왕족을 찾다보니 강화도에서 농사꾼으로 살던 이원범을 찾게 된다. 그렇게 해서 농사꾼으로 평범한 삶을 살던 역적 집안의 후손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강화도에 갑자기 수 많은 사람들이 이원범을 모시려고 나타났다. 그러자 이원범은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역적으로 죽었던 상황이라 남아있던 나까지 죽이려고 이렇게 왔다고 생각하고 산 속으로 도망을 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헌종이 죽은지 이틀만에 왕위에 오르게 된다.

철종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순원왕후는 순조의 왕비이자 김조순의 딸이다. 헌종과 철종 재위 초기 수렴청정을 하며 안동김씨의 세력을 확장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철종 왕비로 안동김씨 김문근의 딸 철인왕후를 왕비로 들이기도 한다.

순원왕후는 수렴청정을 하면서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는 정책을 쓰려고 했지만 당시 지배층이 같은 집안 사람인 안동김씨였기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동생 김좌근은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 또 김조순의 손자들인 김병학 김병기 김병주 김병교 김병국까지 중앙 요직을 차지하면서 3대 60여년간 세도정치를 하며 권력을 누린다.

정상적이라면 이원범은 정말 왕위에 오르기 어려웠던 인물이다. 정조의 이복동생이었던 은언군의 서자 전계대원군의 또 서자로 태어난 사람이다. 방계 중의 방계의 인물이 왕위에 오른 것이다. 은언군은 사도세자의 서자였는데 장남 상계군을 정조의 양자로 들여 왕으로 세우려다가 발각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그의 부인과 며느리가 천주교 신자임이 발각되어 모두 사사되었다. 은언군의 아들인 풍계군과 전계군도 강화도로 유배 당하고 이곳에서 40년 넘게 살게 된다. 그후 유배에서 풀려 한양에서 살며 왕족 대우를 받는다. 이때 철종이 태어나고 13살까지 별 탈없이 지낸다. 그런데 민진용이라는 사람이 이원범의 큰형인 이명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를 꾸며 이명이 사사되고, 형 이욱과 함께 강화도 교동도로 유배를 떠난다.

 

원범은 강화도 유배 생활을 하며 불안한 삶을 산다. 할아버지와 큰형이 역모로 죽었으니 언제 자신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러니 자신을 왕위로 모시려고 왔던 군사들이 나타나자 자신을 죽이려고 왔다는 생각에 산으로 도망을 간 것이다. 하여간 그렇게 왕위에 오른 철종은 숙종의 서자였던 영조, 영조의 서자였던 사도세자, 사도세자의 서자였던 은언군, 은언군의 서자였던 전계대원군, 전계대원군의 서자였던 철종이 왕위에 올랐다. 참 기막힌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왕위에 올랐지만 학식이 부족하니 정사는 안동김씨들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다. 아니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고 궁녀들과 시간을 보내다보니 탄탄했던 그의 몸도 축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겨우 32살의 나이로 돌아가시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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