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유
- 역사공부
- 2020. 11. 14. 16:41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유
미국이 도쿄나 교토 같은 대도시에 원폭을 투하하지 않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을까? 세계 제2차대전 중 독일의 히틀러는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했다. 미국은 이런 사실을 감지하고 독일보다 먼저 핵폭탄을 만들고자 했다.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라고 불리웠는데 매우 비밀스럽게 연구하고 있었다. 오펜하이머 박사의 주도하에 1945년 7월 뉴멕시코에서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 실험이 이루어졌다.
일본의 저항
한편 일본은 1941년 진주만을 기습하여 미국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일본과의 싸움을 하며 조금씩 조금씩 일본을 압박해 나갔는데 일본이 끝까지 버티니 미군 사망자가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도쿄 대공습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마지막 1명까지라도 끝까지 항전한다는 일본의 저항에 미군 피해는 100만명 이상이 될 수도 있겠다고 예상되었다.
핵무기 투하 결정
이에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인류 최초로 핵무기를 일본에 떨어뜨리려고 작정을 하였다. 그럼 어디 도시를 타겟으로 삼을까?
미국은 큰 도시이며 피해를 많이 줄 수 있는 도시를 물색했다. 최대 도시 도쿄를 먼저 생각할 수 있으나 도쿄는 이미 대공습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여기에 핵폭탄을 떨어뜨려봤자 큰 피해를 주지 못할 것 같아 제외되었다. 그래서 교토, 히로시마, 니가타, 고쿠라가 공습 대상 도시로 선정되었다.
교토는 살려두자.
교토는 당시 100만명이 넘는 대도시였으며 군수공장들이 많이 있던 도시였다. 이곳을 폭격하면 일본에게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교토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국방성 장관 헨리 스팀슨이 반대하고 나섰다. 교토는 일본의 아름다운 도시이며, 일본 고유 문화가 잘 간직된 도시이므로 지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교토에 투하하면 일본 전통이 잘 보존된 도시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일본이 더욱 악으로 깡으로 싸울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특히 헨리 스팀슨 장관은 교토로 신혼여행을 간 적이 있어 이곳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었나보다. 이렇게 교토도 제외되었다.
히로시마와 고쿠라
다음으로 후보지로는 히로시마와 고쿠라였다. 이곳은 어느 정도 큰 도시였으며 군수산업이 발달한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1945년 8월 6일 핵무기 리틀 보이를 실은 B-29는 히로시마 상공에서 핵무기 1발을 떨어뜨린다.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히로시마 전체를 날려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폭탄이었다.
고쿠라 기상 악화로 나가사키에 투하
정신이 혼미해진 일본을 완전 무너뜨리기 위해 B-29는 핵폭탄 팻맨을 싣고 고쿠라로 날아갔다. 그런데 마침 고쿠라 상공에 안개가 많이 끼어 목표 지점을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대충 떨어뜨려도 고쿠라에 떨어지겠지만 미국은 일본에 정확한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고쿠라에 떨어뜨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연료도 부족할 수 있으므로 대신 타격할 도시를 찾아야 했는데 그게 바로 나가사키이다. 핵폭탄 투하 후보 도시에도 들지 않았지만 안개 낀 기상상황에서 고쿠라와 가까운 도시라는 이유로 난데없이 핵폭탄을 맞게 된 것이다.
두 번 다시 핵폭탄 사용은 없어야
일본은 도쿄대공습에도 항복을 하지 않았지만 핵폭탄의 위력을 실감하고서는 더이상 미국에 버틸 수 없어 무조건 항복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수 만명도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핵폭탄보다 수 백배, 수 천배 강한 수소폭탄까지 개발된 상태라고 한다. 절대 이런 폭탄이 두번 다시 사용되지 않도록 모든 인류가 다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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