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공부43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인조의 선택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인조의 선택​ 일본이 중국 명나라로 진출하기 위해 조선에 길을 빌려달라고 하며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7년간에 이어진 전쟁에 명나라는 조선을 돕는다는 명분아래 조선에 원군을 파견하였다.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전술, 의병들의 활약, 명의 원군 등으로 우리는 일본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한반도가 전쟁의 소용돌이로 몸살을 앓을 때 만주에서는 여진족들이 강성해져 갔다. 그리고 나라 이름을 후금이라고 하고, 임진왜란이 끝난 후 명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서 명나라를 공격하게 된다. 광해군의 중립외교 이에 명은 조선에 원병을 청한다. 당시 왕은 광해군으로 명과 후금 사이에 중립외교를 실시한다. 하지만 명분을 중시하는 서인 세력들이 광해군을 내쫓고 인조를 옹립한다. 후금은 자신들과 좋은 관계였던 광해.. 2020. 12. 15.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유 미국이 도쿄나 교토 같은 대도시에 원폭을 투하하지 않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을까? 세계 제2차대전 중 독일의 히틀러는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했다. 미국은 이런 사실을 감지하고 독일보다 먼저 핵폭탄을 만들고자 했다.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라고 불리웠는데 매우 비밀스럽게 연구하고 있었다. 오펜하이머 박사의 주도하에 1945년 7월 뉴멕시코에서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 실험이 이루어졌다. 일본의 저항 한편 일본은 1941년 진주만을 기습하여 미국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일본과의 싸움을 하며 조금씩 조금씩 일본을 압박해 나갔는데 일본이 끝까지 버티니 미군 사망자가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도쿄 대공습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마지막 1명까지.. 2020. 11. 14.
전두환과 강창성의 악연 전두환과 강창성의 악연 때는 1973년, 윤필용 사건이 일어난다. 윤필용은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었는데 술자리에서 중정부장 이후락에게 박정희 후계자로 형님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이 박정희에게 들어가 윤필용과 그 측근들이 쿠데타 혐의로 구속되어 처벌을 받았던 사건이다. 윤필용 사건을 조사하던 강창성 보안사령관은 윤필용이 후원자 역할을 한 하나회라는 존재를 알게 된다. 하나회의 존재를 알게 된 강창성 강창성은 하나회를 뿌리 뽑으려 했고 하나회 전두환도 조사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전두환 등 하나회는 오랜 인연이 있던 청와대 박종규 경호실장 덕분에 간신히 군부내에서 살아남는다. 강창성 또한 경상도 출신 장교들의 씨를 말린다는 이유로 보안사령관에서 3관구 사령관으로 좌천된다. 이 사건으로 강창성과 전두.. 2020.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