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 공장 YH무역 농성사건과 김경숙
- 이모저모
- 2022. 2. 20. 17:49
가발 공장 YH무역 농성사건과 김경숙
김경숙은 초등학교 졸업 후 돈을 많이 준다는 서울로 상경하여 청량리 인근 공장에서 보조일을 한다. 그러다가 YH무역으로 직장을 옮긴다. 이곳에서 가발을 만드는데 열악한 노동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1달 일한 월급으로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보낼 수 있어 고단한 공순이 생활을 이어갔다.
장용호 대표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YH무역을 세웠다. 처음에는 종업원이 10여명이었으나 사업이 날로 잘되어 5년만에 종업원 수는 3천여명으로 늘어난다. 가발 하나로 대기업 반열에 올랐으며 외화 획득에도 크게 기여하여 정부로부터 산업 훈장도 받는다.
그런데 가발 수출로 번 돈을 미국으로 빼돌리고 사업도 무리하게 확장하다보니 회사가 휘청거리게 되었다. 그래도 장용호는 미국에서 호의호식하며 생활한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여공들은 월급도 받지 못했고, 심지어 회사를 폐업한다고 발표했다. 여공들은 그동안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자신들이 성장시킨 회사가 문닫는다고 하니 암울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여공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노동3권과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농성을 한다.
한편 청와대에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대책회의가 열린다.
회의 결과는 강경진압이었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제2, 제3의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니 선례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진압작전이 닥친다는 소식에 어떤 여공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곳은 신민당사 밖에 없다고 그곳으로 가자고 말했다. 이들은 목욕가방을 들고 목욕탕에 가는 척하며 신민당 사 주변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정각 9시에 일제히 신민당사로 들어간다.
경비가 막아섰지만 당시 총재였던 김영삼 의원이 여공들을 신민당사로 들어오게 했다. 신민당사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농성도 했다.
경찰들은 양팔에 여공을 검거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101 작전으로 여공들을 연행한다. 흰장갑을 낀 사복 진압경찰들은 곤봉으로 위협했다. 한 당원이 이의를 제기하자 그대로 곤봉으로 머리를 때렸다. 당시 당 대변인도 구타를 당했고, 심지어 다리가 골절되는 의원도 있었다.
의원들도 곤욕을 치르고 있었으니 YH여공들이야 어떻겠는가?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경진압이었다.
당시 대학생 시위 진압은 국민들에게 파급력이 있으므로 안전에 유의했는데, YH무역의 여공들에게는 국민들에 대한 파급력이 적을 것으로 생각하여 무자비한 진압이었다.
바로 그때 <쿵>하는 소리와 함께 여공 한명이 떨어진다. 바로 김경숙 이었다. 당시 21살의 어린 나이였다. 병원으로 급히 옮겼지만 이미 사망한 뒤였다. 경찰은 경숙이 고향집으로 가서 엄마와 동생에게 경숙이가 죽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들을 데리고 바로 병원으로 간 것이 아니라 여관방에 데려다 놓고 2일 후에나 경숙이를 보게 했다. 그때는 이미 부검도 끝나버린 상태였다. 부검을 하려면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데, 그런 것은 무시했다.
김영삼 의원은 기자회견을 하며 "박정희 씨의 하야를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각하를 씨라고 불렀고 공화당 입장에서는 문제의 인물이니 김영삼을 국회의원에서 제명해 버렸다.
이때 김영삼 의원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김영삼 의원이 제명되었다는 소식에 그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 YH사태와 유신철폐를 외치는 소요사태가 일어난다. 부산을 넘어 마산까지 독재타도를 외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부마항쟁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부산과 마산을 둘러보고 박정희에게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박정희는 짜증을 내며 발포 명령을 직접 할 것이라고 김재규에게 화를 낸다. 경호실장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서는 몇 백만명이나 죽였는데 일이백만명 죽는다고 뭐 큰일나겠습니까?라고 황당한 소리를 한다.
박정희가 잘못된 판단을 하였다면 참모진이 올바르게 이끌어야 했는데....
하여간 박정희와 차지철은 김재규에 의해 제거된다. YH무역 직장폐쇄가 여공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신민당사로 들어가게 되고,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김경숙은 죽는다. 김영삼이 박정희를 비판하자 국회의원직을 제명당한다. 그래서 정치적 고향 부산과 마산에서 시위가 일어나 박정희가 시해되게 된다.
결국 YH무역 농성사건이 박정희 시해까지 이어진 것이다.
노동력을 착취하여 회사 오너들은 호의호식하고, 노동자들은 멸시 받고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던 그런 암울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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