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슨 민족자결주의 영향의 3.1운동 유관순

우리는 흔히 3.1운동이 미국 대통령이 주장한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독립을 하려는 의지가 강한 민족이었다. 그리고 윌슨 또한 약소 민족에게 희망을 주고자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란?

한 민족은 다른 민족이나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각 민족의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가 있다. 라는 생각이다. 1918년 1차 대전이 끝날 때 쯤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권에 대해 주창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1919년 승전국 대표들은 프랑스 파리에 모였다. 여기에서 윌슨은 1차 대전 패전국들이 가지고 있던 식민지를 처리하기 위해 민족 자결주의를 적용하려고 한 것이다.

  패전국들의 식민지 국가들에게 너희들의 운명은 너희 스스로 결정하고, 다른 나라(독일 등 패전국)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원래는 이런 의도의 민족자결주의였는데, 조선 등 다른 약소국에도 한줄기 희망과도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서 3.1운동도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일본은 1차 대전의 승전국가였으므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조선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그래도 조선 등 식민 지배하의 국가들은 한줄기 희망과도 같은 사상이었다.

 

3.1 운동에 영향을 준 사건들

-1919년 고종의 갑작스런 붕어(일제가 독살했다는 말이 퍼져 조선인들은 일본에 대해 적대감)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일어난 2.8독립선언

-1919년 2월 1일 중국 지린에서 대한독립선언서

 

3.1운동은 원래 고종의 인산일인 3월 3일에 실시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고종 인산일이므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도교 대표는 고종 인산일에 만세운동을 하는 것은 고종에 대한 불경이라고 주장했다. 그럼 3월 2일에 해야 하는데 그날은 일요일이므로 개신교에서 안식일이라 피하자고 했다. 그래서 결정된 날이 3월 1일이다.

 

민족대표 33인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로 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희생을 우려해 태화관으로 장소를 변경하고, 이곳에서 일제 순사들에게 연행되었다. 민족대표들이 탑골공원에 나타나지 않자 학생들 스스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운동을 벌였다. 만세 운동은 전국적으로 번졌다. 서울에서 공부하던 유관순은 고향 병천으로 내려와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고 투옥되어 옥사하기도 했다.

이후 조직적인 독립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가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는 3.1운동으로 깜짝 놀랐는지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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