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범곤 우순경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 위령탑 추모공원 건립한다
- 이모저모
- 2022. 4. 30. 08:30
우범곤 우순경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 위령탑 추모공원 건립한다
우리나라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죽인 사건이 있다. 경경남 의령경찰서 궁류지서에서 근무하던 우범곤 순경은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 소총 2정, 실탄 129발, 수류탄을 탈취했다. 그리고 지서 앞을 지나던 행인을 죽인 것을 시작으로 62명이 죽고 33명이 다치는 우순경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지나던 행인을 쏜 후 궁류 우체국으로 가서 전화교환원과 집배원 등 3명을 또 쏴서 죽게 만들었다. 당시 1982년은 외부와의 통신이 우체국을 통해서 이뤄지므로 외부와의 연락을 할 수 없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이후 우순경은 궁류면의 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총기를 난사했다. 밤에 불이 켜진 집이 있으면 들어가서 쏘고, 또 사람들이 모인 곳이 있다면 거기에서 또 총을 쐈다. 자신의 집에 가서도 동거녀도 쏴서 죽게 만들었다. 동거녀 전씨가 죽기 전에 진술한 것이 있는데 들어보며 참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우순경이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어요. 그런데 파리가 돌아다녀 파리를 잡으려다가 우순경의 가슴을 치게 되었어요. 깜짝 놀라 깬 우순경은 저(동거녀)에게 뭐라고 하며 크게 다투게 되었습니다. 이후 야간 근무를 위해 지서로 출근한 뒤 홧김에 범행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라고 진술을 한 후 동거녀는 수술을 받았지만 사망하고 말았다.
자신의 집에서 살인을 저지른 후 또 밖으로 나와 궁류 시장 쪽으로 갔다. 거기에서 간첩이 나타났다고 하며 다 나와보라고 소리를 질렀다. 시장 상인들은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불을 켜고 밖으로 나왔다. 이때 우순경은 또 총을 난사하였다. 밖으로 나왔던 시장 상인 등 18명이 우순경의 총에 또 죽은 것이다.
우순경은 다시 다른 마을인 평촌리로 갔는데, 거기에는 상갓집이 있었다. 사람들도 많이 모여 있었다. 여기에서 그는 부의금도 내고 술상도 받았다. 총을 메고 있던 우순경에게 상갓집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자, 그는 간첩이 나타났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봉급도 쥐꼬리만하고, 총각이라고 차별해서 경찰 생활도 더러워 하지 못하겠다고 푸념했다.
이때 한 주민이 카빈 총을 툭 치면서 실탄도 없는 총을 뭐하러 가지고 다니냐고 말하자 이에 발끈한 우순경은 또 다시 상갓집에 모인 조문객 등에게 총을 난사하여 24명이 안타깝게 사망하고 말았다.
상갓집 총기 난사 후 산속에 숨어 있다가 다음날 평촌리로 다시 내려와 서 모씨의 집에 들어가 5명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그러다가 가지고 있던 수류탄으로 자폭하여 우순경 사건은 막을 내렸다.
우범곤 순경 사건은 단시간에 최대의 살인을 저지른 희대의 살인사건으로 기네스 북에 올라 있다. 하지만 언론 보도는 일주일 후 볼 수 없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언론을 통제하여 보도를 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의령군 내에서도 우순경 사건을 쉬쉬할 수 밖에 없었다. 유가족들의 가슴에 한이 맺힌 세월이 벌써 40여년이나 흘렀다.
희생자 위령탑과 추모공원 건립 예정
우 순경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군경이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이 큰 총기난사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희생자 가족은 희생자 추모 행사도 못열고 유족들은 죄인처럼 살아왔다. 그런데 오태완 군수가 김부겸 국무총리에게 위령탑 등 추모공원을 만들수 있게 건의하여 10억원을 지원한다고 한다. 그래서 의령군은 국비 10억원, 군비 5억원 등 15억원의 예산으로 위령탑과 추모 공원을 건립할 예정이라고 한다.
주민들을 지켜야 할 경찰이 오히려 주민들을 살상하였으니 국가의 책임이 큰 사건이다. 뒤늦게나마 국가가 위령탑과 추모공원을 건립한다고 하니 참 다행이다.
우범곤
-우범곤은 술버릇이 심해 동거녀 전양의 가족들은 우범곤과 교제를 적극 반대하였다.
-해병대 출신으로 사격 솜씨가 뛰어났고, 청와대 경호로 근무 차출 되었으나 거친 성격으로 청와대 경호에서 전출되었다.
-파리때문에 동거녀와 다툼을 한 우범곤은 경찰서 지서에 갔다가 술에 취한 채 집으로 왔다. 그리고 동거녀를 심하게 폭행했다. 동거녀의 친척 언니도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우범곤을 말리자 친척 언니도 심하게 폭행했다.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왜 싸우는지 이유를 알아보고 동거녀를 두둔하니 우범곤은 화가 나서 지서에 가서 또 술을 마셨다. 이때 동거녀 동생이 와서 경찰이면 다냐고 소리를 질러대자 이에 폭발한 우범곤은 총기를 탈취하여 사건을 일으켰다.
-우범곤의 성격이 문제가 있어 사건이 발생하였지만 경찰의 대처는 더욱 한심하였다. 당시 파출소장은 우범곤이 총기를 탈취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말을 듣자, 자신이 거기에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하며 도피했다. 그때 무기고에 있던 총을 가지고 출동하였으나 우범곤이 이동한 반대방향으로 출동하였다. 궁류지서 가까운 곳에 면사무소가 있었는데, 이때 우범곤이 총기를 탈취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있으니 동네 사람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라고 방송만 했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지는 않았을텐데, 경찰의 대응이 너무나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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