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알려지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알려지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처음으로 알린 사람은 중앙일보의 신성호 기자였다.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1명이 쇼크사했다는 사회면의 짧은 기사를 썼다. 검찰은 박군이 수사기관의 가혹 행위로 인해 숨졌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중이라고 적었다.그러니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구타나 고문 등을 연상될 수 있는 기사였다. 

박군은 서울대 운동권 학생이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이라고도 적었다. 이러니 시국사범임을 생각할 수 있는 기사였다. 이 짧은 기사가 나가자 기자들과 사람들은 경찰들의 해명을 요구하였다. 이에 경찰은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를 했다.

윤상삼 기자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처음 확인했던 의사의 목격담을 기사를 보도했다. 경찰들은 고문으로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믿었는데 박종철 군이 갑자기 이상해지자 외부 의사를 부른 것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에 도착한 의사는 당시 중앙대병원에 재직중인 오연상 씨였다. 오연상 씨가 현장에 도착하여 살펴보니 바닥에는 물이 흥건하고, 박종철의 복부에서는 수포음이 들렸다. 여러가지 정황을 살펴보니 박종철 군의 죽음은 단순 쇼크사가 아님을 인지했다. 그리고 자신의 본 상황을 윤상삼 기자에게 전달한 것이다.

또 한명의 의사는 국과수 부검의였던 황적준 씨였다. 경찰 수뇌부에서 엄청난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부검했던 내용을 정확하게 기재하였다. 특별한 치명상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목과 가슴 부위에 피멍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건이 이렇게 전개되자 당시 치안본부장이었던 강민창은 박종철 군 고문을 시인하였다. 그러면서 일부 수사관들의 지나친 직무의욕으로 발생한 불상사라고 말했다.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당시 영등포교도소에 복역중인 이부영이 옆방에서 자꾸 우는 소리가 들려서 친분이 있는 교도관에게 물어봤다. 그들은 고문경찰관인데 모든 죄를 자기들이 뒤집어쓰게 됐다는 것이다. 이부영은 은밀하게 휴지에 사건의 전말을 써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사건 진상이 드러나게 된다.


박종철은 경찰에 연행되어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된 선배 박종운이 어디 있는지 말하라고 추궁을 받았다. 박종철은 선배 박종운의 소재를 모른다고 하자 고문을 받다가 죽은 것이다.

 한편 박종철이 지켜주고자 했던 박종운은 2000년에 한나라 당에 입당하여 국회의원 선거에 3번 연달에 고배를 마셨다. 그후 극우 언론사의 논설위원이 되었다. 운동권에서 전향을 했지만 매년 박종철 열사의 기일과 생일에는 박종철 열사가 있는 마석 모란공원을 찾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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