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소니 이성순의 삶

시라소니 이성순의 삶

시라소니 이성순은 1916년 2월 29일에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67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아버지가 목사인 이기정과 셋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시라소니 이성순은 어릴 때부터 골목대장이었다고 한다. 운동을 단 하루도 거르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였다.

보증 문제로 집안 사정이 좋지 않게 되어 16살에는 달리는 열차에 오르내리며 밀무역을 시작하였다. 이런 밀무역을 도비노리라고 한다. 열차에 잘못 올라타다가는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다. 민첩한 시라소니는 이 일을 하면서 몸을 단련하였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싸움도 잘할 수 밖에 없었다.

신의주와 인근 지역에서 싸움을 하다가 이북 제일의 싸움꾼이라고 소문난 박두성에게 싸움을 신청했다. 이북 최고의 주먹이자 박치기 왕으로 소문난 박두성을 찾아간 시라소니는 그를 제압해 버린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을 괴롭히던 일본 형사를 폭행하여 만주로 피신하였다. 만주에서도 이름난 싸움꾼들과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해방 후 고향 신의주로 돌아왔지만 공산주의자들이 활개를 치자 남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때 마침 이북 출신 주먹 정팔이 서울로 와달라는 서신을 받고 서울로 간다. 이화룡이 이끄는 명동파는 주로 이북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6.25 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피난을 간 시라소니는 부산 용가리파에게 몰매를 맞고 있던 이정재를 구해 준다. 이 일로 시라소니와 이정재는 형 아우하는 사이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이정재는 서울 동대문을 거점으로 동대문 상인연합회 회장을 맡으며 돈도 많이 벌고 각종 이권에도 개입한다. 시라소니는 이렇게 성공한 이정재를 찾아가 용돈도 받아 쓰고 하대하는 행동을 하자 슬슬 화가 난다. 또 이북출신들에게도 이권을 나눠 달라는 시라소니의 요구에 이정재는 시라소니를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무실에 찾아온 시라소니를 이정재의 부하들이 각종 무기로 린치를 가했다. 당시 주먹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비열한 행동을 한 것이다. 린치를 당한 시라소니의 몸은 거의 만신창이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정재 부하인 이석재가 병문안 와서 다치지 않았던 왼쪽 다리마저 린치를 가했다.

시라소니는 병원에서 오랜 기간 있다가 퇴원하였으며, 이정재에게 복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복수는 실패하고 주먹 세계를 떠나 기독교에 귀의한다. 5.16 군사정변 시 여러 깡패들이 붙잡혀 가고 시라소니도 체포되었다. 하지만 기독교 신자들의 탄원으로 석방된다.

 

이정재의 죄를 조사하던 검찰은 시라소니를 불러 린치 사건을 조사했다. 이정재와 대질 심문도 했는데, 린치 사건은 없었다며 이정재를 변호해 주었다. 이정재는 사형 선고를 받고 죽었지만 시라소니는 기독교에 귀의하여 평생 신앙인으로 살다가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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