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지켜 낸 김영환 장군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지켜 낸 김영환 장군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된 팔만대장경은 고려인들의 뛰어난 목판인쇄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팔만대장경을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신선의 필체라고 극찬했다. 현재에도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해인사에는 인민군들이 스며 들어 하마터면 팔만대장경이 없어질 뻔 했다. 당시 김영환 장군이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것이다.

팔만대장경이 있는 가야산을 폭격하라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1년 8월 당시 공군 대령인 김영환 장군에게 인민군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가야산을 폭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된다. 인민군 빨치산의 은둔지를 폭격하여 토벌하라는 명령이었다.

김영환 장군은 편대를 이끌고 가야산으로 날아간다. 가서 보니 폭격 명령이 떨어진 곳이 해인사 장경판전이 있는 지점이었다. 김영환 장군은 빨치산 몇 명을 죽이고자 소중한 팔만대장경을 파괴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편대를 돌린다. 명령 불복종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소중한 문화 유산은 파괴할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이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팔만대장경

그는 명령 불복종으로 상부의 호출을 받은 자리에서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영국인들은 세익스피어와 인도 전체를 바꾼다고 하면 바꾸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해인사 장경판전 팔만대장경은 세익스피어와 인도 전체를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이토록 소중한 문화유산을 적 몇명을 죽이고자 파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상부에서는 처음에는 김영환을 괘씸하게 여겼으나 나중에는 그의 숭고한 뜻을 이해하고 공군으로 계속 근무하게 한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1954년 3월 5일 제10전투비행단 창설 기념행사에 참석하다가 기상악화로 동해안에서 실종되었다.

문화 유산을 먼저 지키려고 생각한 김영환 장군의 판단으로 우리 조상의 훌륭한 팔만대장경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