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의 무덤 융릉

사도세자의 무덤 융릉

 

조선시대의 무덤은 신분에 따라 이름을 다르게 붙였다. 
왕, 왕비,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왕의 무덤은 이라고 불렀다.
후궁의 무덤으로 왕세자의 친모의 무덤, 보위에 오르지 못한 왕세자의 세자빈의 무덤 등은 이라고 불렀다. 
그외 일반 사대부들의 무덤은 죽은 사람의 이름 뒤에 라고 불렀다.


그런데 능, 원, 묘의 세 가지 이름을 모두 가진 무덤이 있었다. 바로 융릉이다.

융릉

임오화변 발생

영조는 조선 21대 왕이다. 영조 재위 38년 신하들의 당파 싸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때 아들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갖혀 죽는 임오화변(1762년)이 일어난다.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된 정조

  영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은 수은묘라고 부르고 장례를 신속하게 마쳤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목격한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 아닌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되어 왕위에 오른다. 사도세자의 아들 자격으로 왕위에 오르면 대역죄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셈이니 영조의 첫째아들이었던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되어 왕위에 오른 것이다. 정조가 즉위하고 난 후 효장세자는 진종으로 추존된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정조는 보위에 오른 후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선언해 버린다. 그리고 아버지를 사도세자라고 하지 않고 장헌세자로 추존한다. 수은묘도 격상시켜서 경모궁이라고 칭한다.

 

화성에 이장한 후 현륭원, 융릉으로 부름

명당을 찾아 아버지를 수원 화성으로 이장한 후에는 현륭원이라고 칭한다.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겸해 화성에 행차한다. 이후 1899년 고종은 정조의 아버지를 장조라고 추존하고 현륭원을 융릉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묘, 원, 능 등 조선시대의 무덤 이름을 모두 가진 무덤이 바로 사도세자(장조)의 무덤 융릉이다. 이렇게 무덤 이름이 바뀐 것은 아들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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