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림대군 효종의 북벌론 그리고 갑작스런 죽음

봉림대군 효종의 북벌론 그리고 갑작스런 죽음

 

  1649년 인조가 죽자 봉림대군은 왕위에 올라 17대 왕 효종이 된다. 아버지 인조 때 청나라의 침입으로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난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전하였으나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하고 만다. 머리를 청나라 황제에게 조아리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봉림대군은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많은 고생을 한다.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는 청나라에 끌려온 뒤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청나라에 끌려온 많은 조선인 포로들을 구출하려고 노력했다. 또 청나라에 있으면서 서양의 훌륭한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조선을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다짐을 했다.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

  청나라에서 오랜 볼모생활을 마치고 조선에 귀국한 소현세자는 청나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인조에게 말을 한다. 인조는 청나라를 높게 평가하는 소현세자를 경멸하며 불같이 낸다. 인조는 청나라에게 온갖 굴욕을 당했는데 청나라를 좋게 평가하는 세자를 좋아할리가 없었다.
그런데 소현세자는 조선에 귀국한 후 2달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자신의 아들이 죽었음에도 인조는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다. 남편을 잃은 세자빈 강씨도 죽이기 위해 온갖 스트레스를 주다가 결국 세자빈 강씨도 죽이고, 자신의 손자들까지 유배를 보내며 비참한 삶을 살게 한다.

 

봉림대군 효종의 등극

  청나라에서부터 형을 잘 따르던 동생 봉림대군은 소현세자의 죽음이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세자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으므로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어 인조가 죽은 후 효종 임금이 된다.

효종도 소현세자처럼 영민한 사람이었다. 임진왜란,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을 거치면서 백성들의 삶은 매우 피폐해졌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자 경제 질서를 회복하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한다.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북벌론을 추진한다. 북벌이란 조선의 군사력을 키워서 청을 정벌하자는 정책이다.

  청의 볼모생활을 하며 형 소현세자는 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자 했지만, 동생 봉림대군은 반청 사상을 품게 되었다. 북벌론을 시행하기 위해 우선 조정 내의 친청파를 제거한다. 소현세자와 강빈을 모함했던 김자점을 제거하고 반청을 주장하던 서인 송시열과 송준길을 중용한다. 국방 시스템도 개혁하며 이곳에 서인 세력들에게 추진하라고 지시한다. 

실행되지 못한 북벌

  하지만 북벌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연이은 전쟁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고, 청나라 국방력은 계속 강성해져만 갔으므로 쉽사리 실천하기 어려운 정책이었다. 그래도 국방력 강화에 힘을 쏟아 효종은 쇠퇴한 국력을 많이 회복시켰다. 청나라의 강요에 의해 2차에 걸친 러시아 정벌에도 참여하였다. 백성들의 삶도 점차 안정되어 갔다. 그러나 효종은 오래 보위에 있지 못한다.

 

얼굴에 난 종기

  효종은 얼굴에 큰 종기가 나서 병석에 눕게 된다. 옛날 선대왕들 중 종기로 생명을 잃은 왕들이 많을 정도로 당시 종기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질병이었다. 효종도 종기 치료를 위해 여러 가지 약을 썼지만 낫지 않았다.

 

신가귀의 침에 과다출혈

  효종은 의관 신가귀와 유후성을 불렀다. 이때 신가귀는 병이 나서 집에 쉬고 있었으나 효종의 부름에 병석임에도 효종에게 달려왔다. 효종은 신가귀에게 얼굴의 종기 치료를 위해 얼굴에 침을 맞는 것이 좋은지 물었다. 신가귀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침을 맞아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함께 있던 유후성은 무슨 소리냐고 하며 경솔하게 침을 놓다가 큰일난다고 하며 말렸다. 

  하지만 효종은 신가귀를 매우 신임하였으므로 신가귀에게 침을 놓으라고 한다. 긴장의 순간 신가귀는 효종의 얼굴에 침을 놓는데 그때 신가귀의 손은 큰 떨림이 있었다. 수전증이 있던 신가귀였다. 그래도 절묘하게 효종의 종기에 침을 꽂아 나쁜 피가 나오게 하였다. 

  효종은 <가귀가 아니었다면 병이 위태로울뻔 했다.>라고 하며 신가귀를 칭송하였으나, 이는 그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침을 맞은 후 피가 멈추지 않아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이다. 신가귀도 책임을 물어 교형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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