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길과 김성일, 서로 다른 주장
- 역사공부
- 2021. 3. 15. 20:35
황윤길과 김성일, 서로 다른 주장
1590년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이 사절단으로
일본의 정세를 알아보려 파견되었다.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범할 것이라는 소문에서
일본 정세를 파악하러 간 것이다.
두 사람은 일본을 갔다 와서
서로 상반된 주장을 내세운다.
선조는 일본이 정말 우리나라를
침입해 올 것 같냐고 물어 봤다.
황윤길은 토요토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으니
반드시 조선을 침입해 올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김성일은 토요토미는
별로 위협적인 인물이 아니니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조선은 두 사람의 의견에 조선 조정도
두 편으로 나뉘어 언쟁을 벌인다.
결국 토요토미가 조선을 침입해 오지 않는다는
김성일의 의견을 수용한다.
조선 조정은 앞으로 다가올
임진왜란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황윤길이 사절단으로 가서 조총 2자루를 얻어 왔는데
당시 지도층은 조총의 위력을 잘 알지 못하고
실전배치를 하지 않았다.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이때 조정에서 조총의 위력을 파악하고
실전에 투입할 수 있도록 연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김성일은 퇴계 이황의 문하로
강직함이 있던 선비이자 관료였다.
사절단으로 일본에 가서도 왜인들이
법도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단호하게 꾸짖었다.
정사인 황윤길이 자그마한 것까지
왜와 다툴것이 못된다고 했으나
김성일은 왜인의 잘잘못을 따지며
조선의 위신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조선에 돌아와 각기 다르게
일본 정세에 대해 보고한다.
아마 붕당정치의 폐해가 아닌가 생각된다.
사림들은 훈구파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는다.
사림의 세상이 되었지만 그들은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집단을 만들어 대립을 하게 된다.
이른바 붕당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황윤길은 서인, 김성일은 동인으로
서로 정반대 주장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성룡의 징비록에서는
김성일이 왜놈들이 쳐들어 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만 백성들이 혼란에 빠지고
민심이 흉흉해질까봐
쳐들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황윤길의 말대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화가나서 김성일을 옥에 가두라고 했다.
그러나 김성일의 마음을 알고 있던
유성룡의 간청으로 옥에 갇히지는 않았다.
김성일은 자신의 잘못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전쟁터에서 의병을 모으고
민심을 바로잡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중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김성일이 잘못된 보고로
전쟁준비를 소홀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비판할 것까지는 없다고 본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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