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

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

 

  유신시대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유린당했다고들 한다. 1974년 7월 천주교 지학순 주교는 양심선언을 한다. 유신헌법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의 의도와는 다르게 폭력과 공갈에 의한 국민투표이므로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된다고 말했다. 지학순 주교는 이 양심선언으로 구속이 되고, 15년 형을 받는다.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자 이를 반대하며 일어선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천주교의 젊은 신부들이었다. 1974년 9월 23일 지학순 주교의 석방, 유신 철폐,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300여명의 젊은 신부들은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을 결성한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1000명 정도의 신부님들이 있었는데, 그중 300명이 모였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다는 것인지 알 수 있다.

 함세웅 신부는 당시 명망있던 김승훈 신부님을 정의구현사제단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한다. 김승훈 신부는 흔쾌히 받아들이고 1976년 3월 1일에 구속된 민주인사의 석방을 위한 미사를 연다. 이 미사의 강론은 김승훈 신부님이었다. 언론의 자유와 민주인사와 학생들을 석방 등을 외치며 강론을 하였다. 

이어서 <3.1 민주구국선언문>을 낭독한다. 긴급조치 철폐, 구속된 민주인사 석방,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선언문이다. 이 일로 김승훈 신부와 관련자들은 긴급조치 9호 위반이라고 연행된다. 이것이 <3.1 명동사건>이다. 이렇게 김승훈 신부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중심점에 서게 된다.


김승훈 신부는 당시 고통받고 억압받던 민중들의 삶에 다가가 그들을 품고 보다듬어 준다.사회정의를 위해 앞장서고, 경찰에 쫓기어 온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 준다.

  1987년 3월 김승훈 신부 앞으로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에 대한 진실을 담은 편지가 도착한다. 김승훈 신부는 1987년 5.18 민주화운동 7주기 미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을 말한다. 박종철 군 고문 사건은 조작되었으며 고문하여 죽게 한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했다.

박종철 열사

  이 사건의 조작 책임은 현 정권에 있고, 진상이 다시 규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종철 군을 직접 고문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은 치안본부 대공수사 경위 조OO, 경장 이OO라고 밝혔다. 

  이 폭로는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다. 그런데 왜 신부님들이 이렇게 나설 수 밖에 없었는가? 당시 사회는 걸핏하면 용공으로 몰아 잡아가고 고문하던 시대였는데 신부님들은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우선 신부님들에게는 공산주의자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어렵다. 그리고 교회라는 큰 조직이 있고, 해외와도 연계가 된다. 또 신부님은 결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부양할 가족도 없고, 재산에 대한 욕심도 없다. 모든 것에 초월한 신부님들이므로 약점을 찾아 구속시키기는 어려웠다.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 노력한 김승훈 신부는 2003년 9월 2일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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