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관 홍순언과 석정의 부인의 인연, 종계변무 해결로 광국공신
- 역사공부
- 2021. 6. 29. 20:39
역관 홍순언과 석정의 부인의 인연, 종계변무 해결로 광국공신
역관 홍순언은 조선 사신 일행으로 명나라 사행길을 떠났다. 사행길에서 역관은 보수도 거의 없으니 사무역을 통해 이익을 챙기곤 했다. 하루는 임무도 마치고 호기를 부릴 겸 유곽에 가서 술을 먹게 된다.
그런데 어떤 기생이 자기 몸값을 터무니 없이 높게 부른 여인이 있었다. 홍순언이 의아하여 그녀를 부르니 소복을 입은 채로 홍순언 앞으로 왔다. 아니 왜 이런 옷을 입고 왔을까 하고 물어봤다.
어느 기생과의 만남
그러자 그 기생은 자신은 관리인 아버지와 유복하게 자랐는데 돌림병으로 부모님도 죽고 간신들에 의해 재산도 몰수 당해 부모 장례 치를 돈도 없어 기생집에 스스로 나왔다는 것이다. 또 자신을 사줄 사람이 돈 많은 사람이니 자신을 함부로 하지 않을 대인이라고 생각했고, 돈에 연연하지 않으니 자신을 돌려 보내줄 것으로 생각했다고도 말했다.
그 여인의 사연이 너무 안타까웠던 홍순원은 가지고 있던 돈과 나랏돈을 보태서 그 여인에게 아무말없이 건네 준다. 감격한 여인은 어찌 손도 잡지 않은 저에게 이렇게 큰돈을 주시냐며 나중에 보답할 것이니 성함이라도 가르쳐 달라고 한다.
성만 알려주고 떠나는 홍순언
이름은 알아서 뭐하냐고 하며 자신은 그냥 조선에서 온 홍씨 성을 가진 역관이라고만 알려줬다.
조선에 돌아온 홍순언은 이 일로 옥에 갇히게 된다. 나랏돈까지 유용했으니 선조와 대신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선조는 조선초기부터 있어 온 종계변무를 해결하고자 했다. 고려 공양양 때 이성계의 정적인 윤이와 이초가 명나라로 도망가서 공양왕이 이성계의 인척이며 함께 명나라를 공격할 것이라고 모함했다. 또 이성계의 아버지가 이자춘이 아닌 이인임이라고 말해 명나라 역사책에도 기록이 되었다.
종계변무를 해결한 홍순언
조선의 입장으로는 조선의 왕권 확립과 왕실의 정통성이 관련된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었다. 조선초기부터 약 200년간 명나라에 시정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늘 묵살당했다.
선조는 이번에는 반드시 바로잡고자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려고 했다. 만약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하면 엄한 처벌을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말을 들은 역관들은 보나마나 실패할 것이라고 하며 서로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홍순언이었다. 역관들과 대신들은 홍순언을 선조에게 추천하였다. 홍순언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선에 있으면 죄인의 입장에서 살아가야 했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성공만 하면 공신 반열에 오를 수 있으니 명나라게 가게 되었다.
홍순언이 명나라에 도착하자 어떤 사람이 홍가 성을 가진 역관이 이번 행렬에 있는지 물어봤다. 홍순언이 자신이라고 말하자 예부 상서 석성대감이 홍순언을 찾는다며 데리고 갔다. 석성 앞에 선 홍순언은 석성에게 서 놀라운 말을 듣는다. 바로 자신이 기생집에서 꺼내 준 여인이 바로 석성의 부인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석성은 홍순원이 자신의 은인이라고 하며 몇 년 전 기생집에서 여인을 꺼내준 것을 매우 고마워했다. 그렇게 홍순언은 석성의 도움으로 이성계에 대한 명나라 역사책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광국공신 홍순언
조선으로 돌아온 홍순언은 선조의 큰 환대와 벼슬, 광국공신의 영예까지 얻게 되었다.
세월이 몇년 더 지나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명나라까지 정벌하겠다고 했다. 임금 선조는 의주까지 피난하며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명나라는 조선와 일본이 힘을 합쳐 명나라를 침입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그러니 군사를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이때 홍순언이 명나라에 들어가 또 협상을 한다.
이때 석성은 예부상서에서 더 높은 벼슬에 있었으니 홍순언의 구원병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조선과 일본이 힘을 합쳐 쳐들어온다고 믿었어도 홍순언이 그게 아니라고 하니 홍순언의 말을 석성은 믿을 수 밖에 없었다.
홍순언의 활약으로 마침내 조선에는 명나라 구원병이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역사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조의 고모이자 사도세자 누이인 화완옹주에 대한 영조의 사랑 (0) | 2021.07.18 |
---|---|
해상왕 장보고 청해진 설치, 염장의 암살 (0) | 2021.07.07 |
제주4.3사건으로 무고한 도민 희생 (0) | 2021.04.03 |
조광조의 개혁 도학정치 (0) | 2021.03.15 |
황윤길과 김성일, 서로 다른 주장 (0) | 2021.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