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네로를 황제로 만든 아그리피나
- 이모저모
- 2021. 10. 2. 07:22
폭군 네로는 어떻게 황제가 되었나?
네로는 로마의 5대 황제이다. 그런데 네로는 원래 황제 계승권에서 멀었던 사람이다. 네로가 황제로 등극한 것은 그의 엄마 아그리피나의 집념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고대 로마의 1대 황제는 아우구스투스인데 그의 부관이 아그리파였다. 아그리파의 손녀딸이 바로 아그리피나이다. 아그리피나는 도미티우스와 결혼하여 아들 네로를 낳는다. 아그리피나의 오빠는 로마 3대 황제였던 칼리굴라였다. 칼리굴라는 기행과 잔혹함 등 미치광이 황제로 유명하다.
네로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 도미티우스가 죽는다. 네로가 황실 가문의 사람이었지만 아버지도 일찍 죽고, 황제 직계 자손도 아니어서 황제 계승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그리피나의 집념
그런데 아그리피나는 조용한 여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야망을 위해 아들 네로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 작업을 시작한다.
3대 황제 칼리굴라가 죽자 4대 황제로 클라우디우스가 즉위한다. 클라우디우스는 총 4번 결혼한다. 특히 3번째 부인이 불륜을 저질러 사형을 당한다. 황후 자리가 비었으니 황후를 3명 추천하게 되는데 그중 한 명이 아그리피나였다. 그런데 클라우디우스와 아그리피나는 삼촌과 조카 관계이다.
당시 로마는 근친혼을 허락한다는 법조항은 없었다.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어려웠던 결혼이었으나 클라우디우스는 좀더 좋은 혈통인 아그리피나와 결혼하고 싶어했다. 아그리피나 역시 자신이 황후가 된다면 권력을 잡을 수 있으므로 사람들에게 근친혼을 할 수 있다는 여론을 형성하게 한다. 그 여론에 힘입어 법을 바꾸게 되고, 아그리피나는 클라우디우스의 황후가 된다.
황후가 되었으니 이제 네로를 황제로 만들고자 결심한다. 그런데 문제는 클라우디우스의 친아들 브리타니쿠스가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이라면 후계자는 브리타니쿠스가 될 가망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네로를 양자로 입적
그래서 아그리피나는 계략을 꾸민다. 브리타니쿠스보다 네로가 후계자로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네로를 클라우디우스의 양자로 입적시킨 후 친아들과 똑같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클라우디우스는 나중 후계자 문제로 다툼이 있을 것이 뻔하므로 허락하지 않았다. 물러설 수 없는 아그리피나는 네로를 입적시킨 후 클라우디우스의 친딸인 옥타비아와 결혼하여 혈통 좋은 자식을 얻을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
클라우디우스도 여기에서 잠시 생각을 해 본다. 브리타니쿠스는 불륜을 저지른 3번째 아내의 아들이므로 자신의 친아들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쬐끔 하게 된다. 이런 브리타니쿠스가 나중에 후계자가 된다면 계속 구설수에 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클라우디우스는 네로를 자신의 양자로 삼고, 사위로 삼고, 후계자로 지명을 한다. 어머니 아그리피나의 노력으로 네로는 황제의 자리로 점점 가깝게 다가서게 된다.
다음으로 아그리피나는 클라우디우스가 좋아하는 버섯요리에 독을 탄다. 클라우디우스가 죽어야 아들 네로가 황제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을 탄 버섯요리를 먹었지만 클라우디우스는 죽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음식 먹고 토하고 또 맛있는 음식을 먹던 풍습이 있어 독을 먹었어도 토해내서 독이 퍼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황제의 주치의가 준 깃털로 죽게 된다. 깃털에 맹독이 묻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17살의 나이로 네로가 로마 5대 황제로 등극한다. 황제로 등극하여서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며 백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는다. 그런데 나중에 폭군의 대명사가 된다. 그것은 다음에 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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