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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과 의자왕, 백제 멸망 원인은? 계백과 의자왕, 백제 멸망 원인은? ​ 백제는 의자왕이 왕위에 올라 신라 성을 40여개 빼앗았다. 이에 신라의 김춘추는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이 수모를 갚을까? 라는 생각에 당나라에 협상을 하러 간다. 당의 황제 태종도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보복을 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춘추가 와서 나당 연합군을 조직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친다는 제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당나라는 혼자 고구려를 공격하는 것 보다 누군가 도와주면 훨씬 수월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신라가 도와준다고 하니 얼마나 고마웠을까? 백제와 당 외교 백제도 나름대로 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외교를 잘해왔다. 수와 당이 고구려를 칠 때 금칠 갑옷을 선물로 줄만큼 당과 친선을 맺고자 노력해 왔다. 당의 입장에서.. 2021. 10. 23.
왕의 호칭 조 종 군 왕의 호칭 조 종 군 왕은 살아 생전에 자신의 호칭을 알 수 없다. 돌아가셔야만 종묘에 신주를 모시는데 이때 붙이는 이름을 묘호라고 한다. 예를 들면 세종이라고 하면 종묘에 모실 때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원래는 국가를 처음 창업한 왕에게만 의 호칭을 사용했다. 고려시대를 보면 고려를 창업한 왕건만 라고 불리웠고 나머지 임금은 이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가 많아졌다. 왜냐하면 보다 가 더 위상과 권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칭 세조부터 시작 라는 호칭을 처음 사용한 왕은 이다. 세조 스스로 명명한 것이 아니라 예종, 한명회, 정인지 등이 란 호칭을 사용했다. 계유정난으로 왕위에 오르게 한 사람들이 세조의 위상을 높임으로써 자신들의 권위와 위상도 높아진다고 생각하여 라고 칭한 것이다. 선조 인조 .. 2021. 10. 21.
명성황후 시해 을미사변 후 아관파천한 고종 명성황후 시해 을미사변 후 아관파천한 고종 ​ 한 나라의 국모를 무참하게 살해한 일본 칼잡이들은 누구일까? 일본이 말하는대로 일반 깡패 낭인 집단이 우발적으로 명성황후를 살해했을까? 그건 절대 아니다. 그럼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일본 엘리트 집단이며 우익세력으로 구성된 사람들이다. 조선이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려고 하자 이에 압박을 느낀 일본이 철저하게 계획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범죄인들에 대한 처벌은? 그럼 한 나라의 국모를 살해한 범죄인들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을 죽였으니 당연히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했다. 세계 사람들도 조선에서 국모가 살해되었다는 것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외국의 시선이 두려웠는지 몰라도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가담한 미우라 공사.. 2021. 10. 21.
김부식 김돈중 묘청 정중부 수염 무신정권 김부식 김돈중 묘청 정중부 수염 무신정권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지은 고려 중기 정치가이자 유학자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문신이었지만 중앙 권력층과는 관련 없는 문벌귀족이었다. 그러나 김부식의 4형제는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으로 진출한다. 4형제끼리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중앙에서 힘을 발휘하는 집안이 된다. 당대에는 이자겸이 최고 권력자였는데 그 다음인 권력자 집안이 된 것이다. 이자겸과는 경쟁하지 않고 협력하며 중앙 권력층의 핵심으로 승진해 나간다. 인종의 외조부이자 장인인 이자겸은 왕보다 더한 권력으로 고려의 모든 것을 장악한다. 하지만 이자겸은 충직한 부하였던 척준경에게 제거되었다. 조정은 잠시 척준경이 권력을 잡고 휘둘렀지만 척준경도 정지상에 의해 탄핵되어 제거된다. 그리고 고려 조정은 정지상.. 2021.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