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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차별 알프레드 드레퓌스 사건 알프레드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에 일어나 1906년에 마무리 된다. 하지만 이 사건이 진행되는 12년 동안 프랑스는 극심한 분열을 맞는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들끼지 친드레퓌스파, 반드레퓌스파로 나뉘어 다툼이 벌어진다. 심지어 가족간에도 의견이 갈라져 드레퓌스가 무죄냐 유죄냐를 두고 언쟁이 벌어진다. 결국 1995년에야 프랑스 정부는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무죄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드레퓌스 사건이란 그럼 알프레드 드레퓌스 사건이란 무엇인가?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프랑스 포병 대위로 근무했다. 그런데 1894년 프랑스 파리에 있던 독일 대사관의 쓰레기통에서 청소부가 기밀 내용이 담긴 종이를 발견한다. 프랑스 장교 한 명이 독일에게 포섭되어 돈을 받고 군사기밀을 팔았다는 내용이 담긴 종이였다. 종이.. 2021. 9. 22.
덕만공주 선덕여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덕만공주 선덕여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에서 선물로 보내 온 꽃 그림을 보고 나비가 없으니 이 꽃을 심어도 향기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선덕여왕이 어떻게 우리나라 최초로 여왕이 될 수 있었을까? 당시 왕의 자손으로는 성골 계층의 남자가 한 명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성골은 부모가 모두 왕족인 경우이고, 진골은 부모 중 한 명이 왕족인 경우이다. 진흥왕의 아들들 신라 전성기를 이끈 24대 진흥왕의 아들은 동륜과 진지왕이다. 동륜은 일찍 죽고, 25대 진지왕은 상당히 문란한 생활을 하였다. 결국 진지왕은 쫓겨난다. 진지왕의 아들이었던 용춘은 왕이 되지 못하고, 동륜의 아들인 진평왕이 26대 왕으로 등극한다. 동륜에게는 진평왕 외에도 아들 백반, 국반이 있었다. 진평왕의 딸이 27대 선덕여왕, 국반.. 2021. 9. 11.
절영지연의 유래_초 장왕의 관용 절영지연의 유래_초 장왕의 관용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초나라에 장왕이란 왕이 있었다. 왕위에 오른 지 3년이나 되었는데도 정치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주색잡기에 빠져 있었다. 이런 왕에게 신하들은 올바른 정치를 할 것을 아뢴다. 그러나 그는 포고문을 발표한다. 포고문에는 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왕이 이렇게 주색잡기에 빠져 있으니 대부분 신하들도 이를 다행으로 여기며 백성의 삶을 보살피기보다는 노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오거의 건의 ​어느 날 라는 신하가 주색잡기에 빠져 있던 왕을 찾아왔다. 오거: 왕께 한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장왕: 나에게 간하고자 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모르느냐? 오거: 간하려는 것이 아니라 수수께끼를 내려고 합니다. 장왕: 수수께끼? 그래. 그거 괜찮구나. 한번 말.. 2021. 9. 11.
고려 무신정권 이의민 고려 무신정권 이의민 ​고려시대의 무술은 수박이라고 불리웠고, 무술대회가 자주 열렸다. 수박은 맨손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무술로 오늘날 택견에 해당된다. 이의민은 경주에서 수박대회에 참여하곤 했다. 이때 이의민의 실력을 눈여겨 보던 사람이 있었는데 경상도 안찰사 김자양이었다. 하지만 이의민의 아버지는 소금장수였고, 어미는 천한 노비출신이었다. 하루는 이의민과 형이 주막에서 양반들과 다툼이 있었다. 그 일로 이의민과 그의 형은 관아로 끌려가 모진 매를 맞는다. 이의민을 극진히 아꼈던 형은 이의민을 살려달라고 읍소하여 매를 대신 맞고 죽는다. ​ 안찰사 김자양은 이의민을 죽이기는 아까워 고려시대 수도경비를 담당한 국왕 직속부대인 경군으로 추천한다. 그렇게 경군이 되었지만 천한 출신이 출세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2021. 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