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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저모168

국군포로 장무환 일병 45년만에 귀환 국군포로 장무환 일병 45년만에 귀환 ​1948년 장무환씨는 국방경비대로 국군에 입대한다. 이당시는 모병제라 배고픔과 경제적 어려움에 군대에 입대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장무환도 이렇게 입대를 희망하여 국방경비대에 들어갔으나 폐에 문제가 생겨 8개월만에 의병 제대를 한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장무환은 또 다시 입대한다. 이번에는 국군이 아니라 인민군에 입대한다. 장무환의 고향 경북 울진까지 인민군들이 들어와 어쩔 수 없이 장무환은 인민의용군에 편성된다. 전쟁 속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금강산까지 끌려간다. 그런데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서 도망을 가 고향 울진으로 돌아온다. 수백 km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도망온 것이다. 1952년 11월 또 장무환은 입대 영장이 나와 또 .. 2021. 6. 1.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알려지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알려지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처음으로 알린 사람은 중앙일보의 신성호 기자였다.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1명이 쇼크사했다는 사회면의 짧은 기사를 썼다. 검찰은 박군이 수사기관의 가혹 행위로 인해 숨졌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중이라고 적었다.그러니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구타나 고문 등을 연상될 수 있는 기사였다. 박군은 서울대 운동권 학생이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이라고도 적었다. 이러니 시국사범임을 생각할 수 있는 기사였다. 이 짧은 기사가 나가자 기자들과 사람들은 경찰들의 해명을 요구하였다. 이에 경찰은 치니 하고 죽었다고 발표를 했다. 윤상삼 기자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처음 확인했던 의사의 목격담을 기사를 보도했다. 경찰들은 고문으로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믿었는데 박종철 군.. 2021. 3. 29.
시라소니 이성순의 삶 시라소니 이성순의 삶 ​ 시라소니 이성순은 1916년 2월 29일에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67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아버지가 목사인 이기정과 셋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시라소니 이성순은 어릴 때부터 골목대장이었다고 한다. 운동을 단 하루도 거르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였다. 보증 문제로 집안 사정이 좋지 않게 되어 16살에는 달리는 열차에 오르내리며 밀무역을 시작하였다. 이런 밀무역을 도비노리라고 한다. 열차에 잘못 올라타다가는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다. 민첩한 시라소니는 이 일을 하면서 몸을 단련하였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싸움도 잘할 수 밖에 없었다. 신의주와 인근 지역에서 싸움을 하다가 이북 제일의 싸움꾼이라고 소문난 박두성에게 싸움을 신청했다. 이북 최고의 주먹이자 박치기 왕으로 소문난.. 2021. 3. 25.
사도세자의 무덤 융릉 사도세자의 무덤 융릉 조선시대의 무덤은 신분에 따라 이름을 다르게 붙였다. 왕, 왕비,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왕의 무덤은 능이라고 불렀다. 후궁의 무덤으로 왕세자의 친모의 무덤, 보위에 오르지 못한 왕세자의 세자빈의 무덤 등은 원이라고 불렀다. 그외 일반 사대부들의 무덤은 죽은 사람의 이름 뒤에 묘라고 불렀다. 그런데 능, 원, 묘의 세 가지 이름을 모두 가진 무덤이 있었다. 바로 융릉이다. 임오화변 발생 영조는 조선 21대 왕이다. 영조 재위 38년 신하들의 당파 싸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때 아들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갖혀 죽는 임오화변(1762년)이 일어난다.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된 정조 영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은 수은묘라고 부르고 장례를 신속하게 마쳤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목격한 정조는 .. 2021.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