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의식주 및 유적지 구석기시대 의식주와 유적지 구석기 시대는 지금부터 약 70만년전에 전개되었다. 도구는 주로 있는 그대의 돌이나 뗀석기를 사용하였다. 옷은 동물의 가죽을 입었고, 식생활은 사냥이나 채집, 어로를 통해 해결하였다. 집은 자연 동굴에서 생활하거나 이동생활을 하므로 아무렇게나 지은 막집에서 생활했다. 구석기 시대에는 모두 평등한 사회이며 무리를 지어 이동 생활을 하였다. 대표적 구석기 유적지는 연천 전곡리, 공주 석장리, 청원 두루봉 동굴, 평안남도 상원 검은모루 동굴, 함경북도 웅기 굴포리 유적, 단양 수양개 유적 등이 있다. 구석기 시대에는 도구을 사용한 것이 뗀석기라고 했다. 이중 주먹도끼는 짐승을 사냥해서 가죽을 벗기고, 땅을 파서 먹을 것을 찾는 이 당시의 맥가이버 칼이라고 ..
중학교 때 조선 역사을 배우면서 농사꾼을 하며 살아가다가 왕이 된 인물도 있었다는 것을 알고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역사 선생님께서 그때에는 재능있는 왕족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고 하던 것이 기억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탄생된 왕이 철종 임금이다. 정조가 돌아가신 후 어린 임금 순조가 왕위에 오른다. 정조는 자기가 죽은 후에 자신의 개혁정치와 어린 세자를 잘 이끌 인물로 김조순을 선택한다. 유능한 관료였던 김조순을 순조의 후견인으로 내세운 것이다. 김조순은 정조의 신임이 뛰어났고, 순조의 장인이 된다. 그런데 갑자기 정조가 죽게 되자 김조순은 정조의 뜻과는 반대로 안동김씨들을 대거 등용하면서 순조를 뒤흔든다. 순조는 김조순의 세도정치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뜻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
구석기 시대-기원전 70만년전-무리 사회, 평등한 사회-의: 가죽옷-식: 채집(나무열매), 수렵-주: 동굴이나 막집-유적지: 구상 공연 단청(구석기 유적은 상원검은모루, 공주 석장리, 연천 전곡리, 단양 금굴, 청원 두루봉 동굴)-도구는 뗀석기(주먹도끼-연천군 전곡리에서 발견), 슴베찌르개-청원 두루봉 동굴에서 흥수아이 발견(국화꽃 화석 발견, 장례풍습을 엿볼 수 있다. 광산 소장였던 김흥수 씨가 발견하여 흥수아이라고 명명함. 그런데 구석기 유적이냐 아니냐에 대해 논란이 있기도 했음) 신석기 시대-씨족사회, 부족사회-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는 시기-농작물은 주로 밭농사가 가능한 작물-농사와 목축이 시작되어 산업혁명에 빗대어 신석기 혁명이라고 불리움.-농사가 잘되려면 날씨가 좋아야 한..
6.25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에 파병한 국가들 6.25 한국 전쟁으로 생긴 이산가족들은 지금도 만나지 못하고 가슴에 가족을 묻고 살아간다. 이제 고령의 연세로 만날 가망성이 점차 희박해져가만 간다. 그래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 본다. 그럼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 때 우리나라에 파병한 국가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병력을 지원한 국가들 전투 병력을 지원하여 우리나라를 도와 실제로 전투에 참여한 국가들이다.미국 - 보병 7개 사단, 해병 1개 사단, 극동 함대, 미7함대 261척 군함과 선박, 극동공군 등 66개 대대영국-보병2개여단, 해병1개 특공대, 함정 17척캐나다 - 보병 1개 여단, 구축함 3척, 공군 1개 수송대대터키 - 보병 1개 여단호주-보병 3개 대대, 함정 4척, 1개 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인조의 선택 일본이 중국 명나라로 진출하기 위해 조선에 길을 빌려달라고 하며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7년간에 이어진 전쟁에 명나라는 조선을 돕는다는 명분아래 조선에 원군을 파견하였다.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전술, 의병들의 활약, 명의 원군 등으로 우리는 일본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한반도가 전쟁의 소용돌이로 몸살을 앓을 때 만주에서는 여진족들이 강성해져 갔다. 그리고 나라 이름을 후금이라고 하고, 임진왜란이 끝난 후 명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서 명나라를 공격하게 된다. 광해군의 중립외교 이에 명은 조선에 원병을 청한다. 당시 왕은 광해군으로 명과 후금 사이에 중립외교를 실시한다. 하지만 명분을 중시하는 서인 세력들이 광해군을 내쫓고 인조를 옹립한다. 후금은 자신들과 좋은 관계였던 광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유 미국이 도쿄나 교토 같은 대도시에 원폭을 투하하지 않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을까? 세계 제2차대전 중 독일의 히틀러는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했다. 미국은 이런 사실을 감지하고 독일보다 먼저 핵폭탄을 만들고자 했다.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라고 불리웠는데 매우 비밀스럽게 연구하고 있었다. 오펜하이머 박사의 주도하에 1945년 7월 뉴멕시코에서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 실험이 이루어졌다. 일본의 저항 한편 일본은 1941년 진주만을 기습하여 미국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일본과의 싸움을 하며 조금씩 조금씩 일본을 압박해 나갔는데 일본이 끝까지 버티니 미군 사망자가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도쿄 대공습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마지막 1명까지..
전두환과 강창성의 악연 때는 1973년, 윤필용 사건이 일어난다. 윤필용은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었는데 술자리에서 중정부장 이후락에게 박정희 후계자로 형님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이 박정희에게 들어가 윤필용과 그 측근들이 쿠데타 혐의로 구속되어 처벌을 받았던 사건이다. 윤필용 사건을 조사하던 강창성 보안사령관은 윤필용이 후원자 역할을 한 하나회라는 존재를 알게 된다. 하나회의 존재를 알게 된 강창성 강창성은 하나회를 뿌리 뽑으려 했고 하나회 전두환도 조사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전두환 등 하나회는 오랜 인연이 있던 청와대 박종규 경호실장 덕분에 간신히 군부내에서 살아남는다. 강창성 또한 경상도 출신 장교들의 씨를 말린다는 이유로 보안사령관에서 3관구 사령관으로 좌천된다. 이 사건으로 강창성과 전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