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공부43 롬멜의 백전백승 전술, 롬멜의 리더십, 롬멜의 고지전 승리요인 롬멜의 백전백승 전술, 롬멜의 리더십, 롬멜의 고지전 승리요인 세계 제1차대전 당시 에르빈 롬멜은 독일군 중위 계급을 달고 전쟁터에 나간다. 참전 후 롬멜은 병사들의 급식을 담당하는 보직을 맡았다. 식사 준비를 해서 말 마차에 실어 전선에 보급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땅이 진흙탕이라서 이동하기 쉽지 않았다. 전선에 도착하여 배식하려고 했는데 이미 장교들이 다 전사한 후였다. 군사들을 지휘할 장교가 다 죽었으니 상부에서는 롬멜을 중대장으로 임명한다. 얼떨결에 중대장이 되었지만 그곳은 매우 위험한 지역이라서 죽을 각오로 중대장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중대장이 된 롬멜은 그날 적진에 들어가 적 후방까지 침투에 성공한다. 아주 적은 3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적진에 들어가 적의 중대를 쓸어 버린 것이다. 상부에서는.. 2021. 8. 3. 로마 교황청 근위대가 스위스 용병인 이유, 루이16세 마이 앙투아네트 로마 교황청 근위대가 스위스 용병인 이유, 루이16세 마이 앙투아네트 스위스는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나라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를 찾는다. 하지만 예전에는 산지가 전 국토의 70%, 호수는 5%로 되어 있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전 국토의 25%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산지와 호수의 영향으로 냉해가 심해서 농사가 잘 되지 않는 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가장 못사는 나라 중의 하나였다. 먹을 것을 찾아 살길을 찾아 스위스 젊은이들은 스위스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그들이 찾은 일자리 중 하나는 용병이었다. 용병이란 봉급을 주며 군인으로 쓰기 위해 고용된 병사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끝까지 항전했다. 스위스 용병의 활약 상을 예를 들어 보겠다. .. 2021. 7. 30.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스코필드 박사 1919년 서울 탑골공원에서 학생들의 주도로 조선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3.1만세운동이 일어난다. 이어 3월 4일에는 평안남도 강서, 3월 16일 경남 합천 등 전국 각지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난다. 경기도 화성에서도 송산, 향남, 장안 우정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다. 장날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날에 만세운동을 벌인 것이다. 평화적인 만세 운동에 일본은 총을 앞세워 주민들 46명을 죽이고, 4백 여명을 연행하여 고통스런 고문까지 가했다. 일제의 이런 만행에 주민들은 너무나도 분개하여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습격했다. 그리고 성난 군중들은 일본 순사까지 죽이는 일이 발생한다. 조선인 순사 조희창의 꼬임 이에 일본은 화성을 눈여겨 보게 된다. 그러다가 4월 15일 화성 제암리에 일본군들이 들이닥친다. .. 2021. 7. 20. 정조의 고모이자 사도세자 누이인 화완옹주에 대한 영조의 사랑 정조의 고모이자 사도세자 누이인 화완옹주에 대한 영조의 사랑 화완옹주는 영조와 후궁이었던 영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화완옹주의 동복 오빠가 뒤주에서 비참하게 죽은 사도세자이다. 화완옹주의 동복 언니도 5명 있었는데 첫째가 화평옹주, 다섯째가 화협옹주였고 둘째, 셋째, 넷째 언니들은 어렸을 때 사망했다. 11살 때 정치달과 결혼 화완옹주는 11살 때 이조판서 정우량의 아들 정치달과 결혼한다. 하지만 나이가 어린 관계로 3년 더 궁에 머물다가 살림을 차렸다. 영조는 첫째 딸 화평옹주를 매우 아꼈는데 화완옹주가 10살일 때 화평옹주는 출산을 하다가 사망하였다. 화평옹주가 세상을 떠나자 화완옹주가 영조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영조의 자식을 편애하였는데 영빈이씨의 소생인 화평과 화완옹주는 매우 .. 2021. 7. 18. 이전 1 ··· 3 4 5 6 7 8 9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