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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김득신의 학문의 길, 반복의 힘 김치와 김득신의 학문의 길, 반복의 힘 조선 중기 김득신이란 선비가 있었다. 화가였던 김득신과는 동명이인이다. 김득신은 어렸을 때 천연두를 앓아서 그런지 우둔하고 총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김치는 김득신을 질책하지 않고 꾸준하게 격려해 주었다. 아버지의 노력이 있었는지 드디어 열 살이 되어서 겨우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각이 발달하지 못해 글을 배우면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에 남지 않았다. 아버지 김치의 격려 김치는 김득신에게 학문의 성취가 늦는다고 해서 성공못하리라는 법은 없다며 그저 읽고 읽고 또 읽고 반복하다보면 학문을 이룰 수 있다고 하며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워낙 머리가 둔해 동네사람들은 학문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똑똑한데 .. 2021. 11. 13.
동인 서인 남인 등 조선의 붕당정치 동인 서인 남인 등 조선의 붕당정치 조선 중기 때부터 정치 운영 형태는 붕당정치이다. 붕당정치는 학연을 바탕으로 형성된 여론인 공론으로 국정을 이끌어 나간다. 즉 학문적 생각이나 정치적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을 붕당이라고 한다. ​ 조선 13대 왕 명종은 순회세자를 낳았으나 어린 나이에 죽어 중종의 일곱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3남이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그는 바로 1552년 즉위한 14대왕 선조이다. ​선조가 즉위했을 당시는 그 동안 권력을 휘둘렀던 훈구 세력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선조는 사림파을 적극적으로 불러들여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다. ​ 하지만 사림들은 앞선 왕대에 외척들의 척신정치의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보였다. 그리고 이조전랑이라는 벼슬을 놓고 다투는 과정에.. 2021. 11. 3.
계백과 의자왕, 백제 멸망 원인은? 계백과 의자왕, 백제 멸망 원인은? ​ 백제는 의자왕이 왕위에 올라 신라 성을 40여개 빼앗았다. 이에 신라의 김춘추는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이 수모를 갚을까? 라는 생각에 당나라에 협상을 하러 간다. 당의 황제 태종도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보복을 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춘추가 와서 나당 연합군을 조직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친다는 제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당나라는 혼자 고구려를 공격하는 것 보다 누군가 도와주면 훨씬 수월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신라가 도와준다고 하니 얼마나 고마웠을까? 백제와 당 외교 백제도 나름대로 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외교를 잘해왔다. 수와 당이 고구려를 칠 때 금칠 갑옷을 선물로 줄만큼 당과 친선을 맺고자 노력해 왔다. 당의 입장에서.. 2021. 10. 23.
왕의 호칭 조 종 군 왕의 호칭 조 종 군 왕은 살아 생전에 자신의 호칭을 알 수 없다. 돌아가셔야만 종묘에 신주를 모시는데 이때 붙이는 이름을 묘호라고 한다. 예를 들면 세종이라고 하면 종묘에 모실 때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원래는 국가를 처음 창업한 왕에게만 의 호칭을 사용했다. 고려시대를 보면 고려를 창업한 왕건만 라고 불리웠고 나머지 임금은 이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가 많아졌다. 왜냐하면 보다 가 더 위상과 권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칭 세조부터 시작 라는 호칭을 처음 사용한 왕은 이다. 세조 스스로 명명한 것이 아니라 예종, 한명회, 정인지 등이 란 호칭을 사용했다. 계유정난으로 왕위에 오르게 한 사람들이 세조의 위상을 높임으로써 자신들의 권위와 위상도 높아진다고 생각하여 라고 칭한 것이다. 선조 인조 .. 2021. 10. 21.